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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강 [바람이 분다, 가라] ( 코스모스도서관 List | 23-04-17 21:00 )

네 입술은 부드러웠다. 작고, 얇고, 좋은 냄새가 났어. 복숭아 통조림에서 나는 것 같은 달콤한 냄새. 한 번, 꼭 한 번이었지. 갑자기 네가 내 얼굴을 끌어당기고 입술을 포갰지. 나는 너무 놀라 네가 하는 대로 가만히 있었지. 왜 그랬어, 라고 내가 묻자... Tag: 밑줄만

프랑수아즈 사강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 코스모스도서관 List | 23-04-12 21:00 )

그녀는 열린 창 앞에서 눈부신 햇빛을 받으며 잠시 서 있었다. 그러자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라는 그 짧은 질문이 그녀에게 갑자기 거대한 망각 덩어리를, 다시 말해 그녀가 잊고 있던 모든 것,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던 모든 질문을 환기시키는 것처럼 여... Tag: 밑줄만

에밀리 브론테 [상상력에게] ( 코스모스도서관 List | 23-04-13 21:00 )

땅 속에서 차갑게 멀리멀리, 음울한 무덤 안에서 차갑게, 멀리 떨어진, 그대 위에 깊이 쌓인 눈! 나는 잊었는가, 나의 단 하나의 사랑이여, 모든 것을 잘라 버리는 세월의 물결에 따라 결국 헤어진 그대를 내가 사랑했던 것을? 지금 홀로되어, 히스와 고사... Tag:

최승자 [빈 배처럼 텅 비어] ( 코스모스도서관 List | 23-04-14 21:00 )

살다보면 때로는 봄이 오겠지 때로는 낯선 대양 하나 새로 생기겠지 질펀한 절망 속에서도 오렌지 같은 희망은 있겠지 불러도 불러도 대답을 하지 않을 때 그래도 살다 보면 때로는 봄이 오겠지 어디서 낯선 대양 하나 새로 생기겠지 나의 생존 증명서는 詩였... Tag:

황정은 [연년세세] ( 코스모스도서관 List | 23-04-11 21:00 )

이순일은 매일 밤늦게 퇴근하는 한영진을 집 앞 가로등 밑에서 기다렸다. 컴컴한 골목 모퉁이를 돌아 저만큼 떨어진 가로등 아래 선 엄마를 발견하면 한영진은 늘 얼마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걸 감추려고 툴툴대며 집 안으로 들어가면 거실에 놓인 상에 한... Tag: 밑줄만

조해진 [빛의 호위] ( 코스모스도서관 List | 23-04-08 21:00 )

아버지가 좀처럼 돌아오지 않는 그 방에서 거의 날마다 똑같은 꿈을 꿨노라고, 그 꿈을 꾸고 싶지 않아 잠이 올 때까지 스노우볼의 태엽을 감았고 일분 삼십초 동안 눈 내리는 세계에 빠져 있다가 마지막 멜로디가 끝나기 직전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Tag: 밑줄만

황정은 [일곱시 삼십이분 코끼리열차] ( 코스모스도서관 List | 23-04-09 21:00 )

왜 동물원에 오자고 했어. 나는 물었다. 평범하니까. 인간답고.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동물원은 가장 인간적인 영역이잖아. 그런가. 우리를 만들어서 동물들을 넣어두고 관람료를 받는 일 같은것을 인간 외에 어떤 동물이 생각해내겠어. 동물을 관리하는 ... Tag: 밑줄만

황정은 [디디의 우산] ( 코스모스도서관 List | 23-04-10 21:00 )

dd를 만난 이후로는 dd가 d의 신성한 것이 되었다. dd는 d에게 계속되어야 하는 말, 처음 만난 상태 그대로, 온전해야 하는 몸이었다. d는 dd를 만나 자신의 노동이 신성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사랑을 가진 인간이 아름다울 수 있으며, 누군가를 ... Tag: 밑줄만

미야모토 테루 [환상의 빛] ( 코스모스도서관 List | 23-04-05 21:00 )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생각도 나지 않습니다만, 그 무렵에는 저 혼자가 되면 무의식적으로 당신에게 말을 거는 버릇이 생겨버렸습니다. 그리고 제가 말을 거는 당신은, 선로를 걸어가는 뒷모습의 당신이었습니다. 상상하는 것만으로 마음이 차가워져버리는 그 ... Tag: 밑줄만

정소현 [너를 닮은 사람] ( 코스모스도서관 List | 23-04-06 21:00 )

그러나 나는 이름이 알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지나간 시절의 나를 알고 지내던 사람들이 나를 떠올리는 것이 싫었고, 다시 그들과의 관계를 이어나가야 하는 상황이 올까 싫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 우려처럼 네가 찾아왔다. 이제 너는 우리가 만났을 무... Tag: 밑줄만

최진영 [내가 되는 꿈] ( 코스모스도서관 List | 23-04-07 21:00 )

속상한 일 있으면 말을 하고. 말을 하면 뭐, 그럼 뭐가 되는데. 말을 해야 알지. 그러니까, 엄마가 알면 뭐가 달라지냐고. 엄마를 잃은 엄마에게 짜증을 내면서 나는 내가 정말 쓰레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더 쓰레기가 되고 싶었다. 쓰레기이면서 쓰레기 ... Tag: 밑줄만

김사과 [0 영 ZERO 零] ( 코스모스도서관 List | 23-04-04 21:00 )

기분이 그렇게 둥둥 뜨다 보면, 끝없이 하늘로 둥, 둥, 둥 떠가다 보면 발생하는 필연적인 결과는 뭘까? 그야 물론 빵! 하고 터지는 것! 그게 바로 조울증 환자의 공식적인 절차 아닌가? 멀쩡한 인간을 조울증 환자로 만들 수 있을까? 나는 약간 궁금해졌다.... Tag: 밑줄만

김사과 [N E W] ( 코스모스도서관 List | 23-04-01 21:00 )

가난한 자들은 부유한 자들과 완전히 섞여서도 안 되지만 완전히 격리되어서도 안 된다. 그들은 멀리서, 보이지 않는 벽 너머에서 끊임없이 서로의 존재를 느껴야 한다. 그래야 쌍방 간의 두려움이 유지되며, 살얼음 같은 평화가 지속될 수 있다. 너무 높지도... Tag: 밑줄만

김사과 [더 나쁜 쪽으로] ( 코스모스도서관 List | 23-04-02 21:00 )

우리는 좀더 중요한 대화를 나눌 수도 있었다. 좀더 좋은 시간을 보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충분히 나빠지지 못했고 밤은 충분히 차갑지 못했으며 말들은 움찔거리며 멈추어 서 있을 뿐이었다. 그가 내 이름을 부를 때, 시간이 멈춘다. 그가 나를 부를 ... Tag: 밑줄만

김사과 [0 이하의 날들] ( 코스모스도서관 List | 23-04-03 21:00 )

제발트의 글이 소설과 에세이, 허구와 비허구 사이에 어정쩡하게 끼여 있는 글더미로 남을 수밖에 없는 이유도 그것이다. 그의 글이 가진 강한 문학적 윤리가 무언가 되기를, 어딘가 가기를 완강하게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무언가를 이루려는 인간의 광기가 ... Tag: 밑줄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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